믿음이 작용하는 변화의 체험
-히브리서11:1~3
“이 사람들”의 한 마디 ”고백”
The ‘testimony’ of the lives of ‘these people’.
“이 사람들And these all”이 누구인가? 아벨로부터 다윗까지는 1,000년간의 긴 시간
“이 사람들”에 대하여 히브리서 12:1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the cloud of witnesses“, 즉 히브리서 11:3절에는 ”선진들the elders“, 곧 아벨v.4, 에녹v.5, 노아v.7, 아브라함v.8, 사라v.11, 이삭v.20, 야곱v.21, 요셉v.22, 모세v.23, 라합v.20, 기드온v.32, 바락v.32, 삼손v.32, 입다v.32, 다윗v.32, 사무엘v.32 등 16명을 비롯하여 수많은 선지자들과 믿음으로 산 구약의 여 성도들이라고 했다.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역사와 그 시대를 극복한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11:38절에서는 ”이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vv. 33~37
∙히브리서 제11장에 소개된 “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5가지:
❶ 믿음through faith 으로 산 간증
히11:1 ∥ cf.히10:39
❷ 말씀God's Word, the Word of God 에 대한 간증
히11:3 ∥cf. 고후 5:7; 롬4:17; 전3:11; 딤후1:9; 엡1:11; 사40:10~11
➌ 순종obedience 의 삶에 대한 간증
히11:8~9 아브라함-무조건 순종; 모세-변명 후 순종, 출3:11~12; 출4:11∥히5:8, 9; 13:17
❹ 증거assurance, The Evidence of Faith 에 대한 간증
히11:1∥‘증거’는 꿈이나 환상이 아닌 실제Ἔστιν-'to be: 'is'' ειμι
❺ 소망Hope │ For he looked for a city 에 대한 간증
11:9, 10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현실을 넘어서 미래소망...히브리서에 5번(소망)-3:6; 6:11~12; 18~20; 7:18~19; 10:23
∙히브리서 6:19~21
19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21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22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Key Words in 'Hebrews'
단 어 | 사용회수 | 성경구절-일부-NIV | 단 어 | 사용회수 | 성경구절-일부-NIV | |||
Faith 믿음 |
38 | 2:17; 3:2, 5, 6; 4:2, 14; 6:1, 12; 8:9; 10:23, 38, 39; 11:1, 4, 5, 6, 7, 8, 9, 11, 13, 17, 28 | High Priest 대제사장 |
17 | 2:17; 3:1; 4:14, 15; 5:1, 5, 10; 6:20; 7:26, 27, 28; 8:1, 3; 9:7, 11, 25; 13:11; | |||
Blood 피 |
23 | 2:14; 9:7, 12, 13, 14, 18, 19, 20, 21, 22, 25; 10:4, 19, 29; 11:28; 12:4, 24; 13:11; 13:12, 20 | Promise 약속 |
17 | 4:11; 6:12, 13, 15, 17; 7:6; 8:6; 9:15; 10:23, 36; 11:9, 11, 13, 17, 33, 39; 12:26 | |||
Better 더 나은 |
22 | 1:4; 3:3; 6:9, 13, 16; 7:7, 19; 8:6; 9:11, 23; 10:34; 11:4, 16, 26, 35, 40; 12:24 | Perfect 온전 |
11 | 2:10; 5:9; 7:11, 19, 28; 9:11; 10:1, 14; 11:40; 12:2, 23 | |||
Sacrifice 제사 | 21 | 5:1, 3; 7:27; 8:3; 9:9, 23, 26, 28; 10:1, 3, 5, 8, 10, 11, 12, 14, 18, 26; 11:17; 13:15, 16 | Eternal 영원 |
6 | 5:9; 6:2; 9:12, 14, 15; 13:20 | |||
Covenant 언약 | 20 | 7:22; 8:6, 7, 8, 9, 10, 13; 9:1, 4, 15, 18, 20; 10:16, 29; 12:24, 13:20 | Confidence 완전 |
5 | 3:6, 14; 4:16; 10:19; 10:35 |
※∙Key Words in 'Hebrews' 〈warrencampdesign.com〉
∙이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죽었다. 히11:13
These all died in faith
∙히브리서 11:1~3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the substance 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the evidence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a good report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3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do appear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2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report. 3Through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worlds were framed by the word of God, so that things which are seen were not made of things which do appear.
1信就是所望之事的實底、是未見之事的確據。2 古人在這信上得了美好的證據。3我們因著信、
就知道諸世界是藉 神話造成的.這樣、所看見的、並不是從顯然之物造出來的。
∙히브리서 11:39~40
39‘이 사람들은’11:2 ‘선진들’; v.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KJV: And these all, having obtained a good report through faith, received not the promise: God having provided some better thing for us, that they without us should not be made perfect.
개혁주의 신앙은 ‘지식知識, knowledge’, ‘시인是認, assent’, ’신뢰信賴, trust ‘로 구성된다.
히브리서 제11:1~3절은 믿음의 구성 요소나 믿음의 정의를 설명하기 보다는 믿음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용 하는가faith operates 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히브리서10:39절에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했다.
“믿음πίστις”은 우리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작용을 한다.
참된 믿음은 한 번 가진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는 속성을 지닌다.
다시 말씀드리면, 히브리서 제11장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당장 우리 몸과 마음에서 어떻게 그 믿음을 느낄 수 있으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에 어떤 변화와 영향을 받게 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히브리서11:1~3절에서 중요한 단어 세 개가 ’믿음의 작용The Operation of Faith‘에 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실상the substance, ὑπόστασις」”, “증거the evidence, ἔλεγχος”, “증거a good report, ἐμαρτυρήθησαν”라는 말이다. 이 세 개의 단어가 히브리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선진들이 얻었던 증거”라는 말은 우리 앞서 「믿음의 실제 증거가 있는 삶」을 살았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했던 고백적인 간증이다.
그 수많은 “선진들”에 대하여 히브리서 제11장은 모두 16명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이들 “선진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보고 살았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세 가지로 구분하여 소개한다.
히브리서 11장은 시련 가운에 있는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옛 생활로 돌아가지 말 것을 격려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의 주제가 되는 단어가 바로 “믿음”이다. 이를 위해 히브리서 10:23~25은 이렇게 격려한다. 2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 믿음은 바라는 것에 대한 실상을 갖는다.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히브리서 제11장은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소개한다.
"바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실상”은 다시 오실 예수님께 대한 소망에 기초한 “믿음”이다.
무슨 뜻일까? 히브리서에 모두 31번 사용된 “믿음πίστις”이라는 말은 실제적으로 하늘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 “믿음πίστις”이 작용되는 실제적인 영역은 이 세상이다. 이 “믿음πίστις”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사용된다.
즉 “믿음πίστις”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로마서 4:17절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20~21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된 16명을 비롯한 수많은 “선진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다.
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 그러나 죽었다. 무슨 뜻일까?
아브라함은 목적지를 모른 채 갈대아 우르를 떠나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믿음으로 그는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 히11:8~10 을 바라면서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본향”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믿음은 하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 믿음은 이 세상 현실에서 작용을 한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믿음은 이 세상 환경에서 하늘 영역에 속한 믿음을 붙들고 사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세상 환경을 헤쳐 나갈 용기와 담대하게 한다는 것이다. 히10:19~38 따라서 히브리서 12:2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했다.
⑴ 믿음은 영적 세계를 깨닫는 지각을 갖게 한다.
히브리서에 31번, 히브리서 11장에만 24번 사용된 “믿음πίστις”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 육체의 눈과 귀와 감각적 기능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재 것만 느끼고 깨닫게 한다.
이것이 우리의 오관五觀의 한계입니다.
우리의 눈은 날씨가 쾌청할 때 최대 약 5km-3miles 볼 수 있고, 귀는 최대 20m 거리에서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의 오관五觀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의 오관五觀의 한계를 넘어서 영적 세계를 보고 느끼게 하는 것이 “믿음πίστις”이다. 믿음이 아니고는 영적인 세계와 신령한 미래를 보고 느낄 수 없다.
우리의 눈과 감각은 보이는 것에 대한 확신과 증거를 갖게 한다.
우리의 눈과 육체적 감각 기관이 보이는 물질세계를 느껴서 깨닫게 하는 것처럼 “믿음πίστις”은 영적인 세계를 느끼고 깨닫게 한다. 이것이 믿음이 우리에게 작용하는 변화이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천국과 지옥을 느끼지 못했는데, 예수를 믿은 후에는 믿어지는 것이 바로 믿음의 작용이 준 변화의 체험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의 지각과 감각이 어두워져서 영적 세계를 느끼거나 알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πίστις”으로 영적 세계를 느끼고 알게 되는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πίστις”이 우리게 작용한 변화의 체험이다.
구약성경 하박국2:4절에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6-17라고 했다.
이 말씀은 어거스틴AUgustin, AD354-AD430의 눈을 뜨게 하여 그를 믿음의 용사로 만든 성경이고,
지금으로부터 506년 전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을 격발시킨 성경이이다.
이렇게 믿음이 우리에게 작용할 때 개인과 가정, 사회, 그리고 세계 역사를 변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⑵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
“믿음으로Πίστει, KJV, Through faith, NIV. 'By faith' ”라는 말이 24번 사용되었다.
히브리서 제11장에 소개된 16명의 선진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히11:2~3 믿음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느끼고 체험될 수 있는 직관력을 준다.
“믿음πίστις”은 영적 세계를 느끼고 알게 할 뿐 아니라 그 영적 세계를 “바라게”한다.
그래서 히브리서11: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ἐλπιζομένων의 실상”이라고 했다. 볼 수 있고, 보이는 것은 굳이 “믿음πίστις”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은 믿음이 없어도 다 느껴지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감각과 지각은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과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바라게ἐλπιζομένων‘ 한다.
이 말은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 성취인 “구원”을 적극적으로 기대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즉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런 믿음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5:6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but faith which worketh by love.”이라고 표현했다. 믿음은 ’작용‘한다. 참된 믿음은 ’구원‘을 바라게 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게 하는 작용,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를 나타낸다. 히브리서에 소개된 16명의 성도들과 그 외 수많은 성도들은 모두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주목했다.
∙고린도후서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 함이 로라.
∙로마서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믿음”과 바라는 “소망”과는 서로 분리하지 않는다. 고전13:3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지향하는 바람이 있다. 바꿔서 말하면 바라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다. 즉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다. 믿음은 보이는 것을 “바라게” 하지 않는다.
무엇을 바라는가에 따라서 믿음이 참된 것인가 아니면 그릇된 것인가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 신앙은 눈에 보이는 것을 바란다. 그러나 성경적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란다.
믿음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그 믿음은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양量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質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믿음의 질質을 말씀하실 때 “겨자씨 한 알”마17:20의 믿음을 강조셨다.
이런 믿음은 믿음의 대상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즉 믿음은 믿음의 대상을 어떻게 신뢰하는가와 정비례 한다.
히브리서 12:2절에 의하면 우리 믿음의 대상이 누구라는 것을 분명하게 소개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말씀은 모든 참된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 자기중심에서 객관적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그 개관적인 믿음의 대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한 것이다.
⑶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체험하게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ὑπόστασις, 實體, 1:3; 3:14”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 전자기기인 텔레비전TV, television은 ’遠거리‘라는 그리스어 접두사 ’tele‘와 화상을 뜻하는 'vision' 을 합성시킨 말이다.
이 TV의 원리는 방송국에서 송출되는 전자파電磁波를 받아서 TV 모니터 액정에 영상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확대한 원리이다. 그러나 전자파電磁波 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TV 모니터에 채널을 맞추면 어디서든지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잡아서 TV 세트 액정에 비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영상이 실체는 아니다. 실체는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탈렌트, 프로듀서가 연출하는 그 장면을 전파를 통해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믿음” 자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채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증거”를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실상ὑπόστασις”으로 번역된 단어는 삼위일체 교리에서 다루어지는 중요한 단어이고,
그 해석과 적용 역시 어려운 단어 중의 하나이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사도 바울과 히브리서 기자에 의해서 다섯 번사용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글성경은 각각 다르게 번역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이 단어의 적용도 다르다.
∙사도 바울은 이 단어를 교회 내의 갈등과 관련해서 사용했고,
∙히브리서 기자는 신학적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이해한다.
다만 여기서는“실상ὑπόστασις”이라는 단어의 원래 뜻에 가까운
단순한 적용으로써 ’실체substance‘, ’현실reality‘, ’보증assurance‘, ’권리‘, 고린도후서 9:4; 11:17절에는 “확신”이라는 말로 적용되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바라는 것들”에 대한 소유권의 ’보증保證‘을 뜻한다. 은행에서 발행하는 수표를 ’보증수표‘라고 한다. 보증수표는 수표를 발행한 은행이 책임진다는 뜻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은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이 보증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히브리서11:6절에 의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다시 말씀 드리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우리의 “믿음”이 “바라는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수표‘라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이 보증 수표가 바로 현재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믿음”입니다. 이 “실상”을 잘 간직해야 한다.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를 고백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ὑπόστασις 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ἔλεγχος” 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를 준다.
여기 “증거ἔλεγχος, the evidence”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 단 한번 사용되었다.
그 뜻은 ’드러내다, 밝혀지다to bring to light‘, ’폭로하다‘, ’책망하다‘ 딤후3:16, ’시험하다test‘ 등 다양한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 “증거ἔλεγχος”는 내적 확신의 결과로 나타나는 데 적용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서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증거ἔλεγχος”의 작용을 한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는 이 유한한 세상과 달리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믿음으로만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다.
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게 한다.
고린도후서4:18절에 보면 “우리가 주목하는μὴ σκοπούντων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했다. “주목하다μὴ σκοπούντων”라는 말이 신약성경에 단 한 번 사용된 것으로 안다. 이 말은 눈을 한 곳에 고정해서 보는 것to look at을 뜻한다.
믿음은 우리의 영안靈眼과 의식意識과 방향을 오로지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시킨다.
이것이 믿음이 우리에게 작용하는 변화이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Lot, 두 사람이 다 같이 눈으로 본 대상이 달랐다. 롯Lot은 그의 눈에 보인 것beheld, v.10 이 물이 넉넉한 요단 지역, 소돔과 고모라를 중심한 그 지역은 롯Lot에게는 “하나님의 동산”과 비옥한 “애굽 땅” 같이 보이는 황홀감을 같게 했다. 롯Lot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을 떠났다.
건강한 사람의 가시거리는 20킬로미터20miles~50킬로미터30miles라고 한다.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역시 믿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롯Lot 의 눈앞에 펼쳐진 요단들을 볼 때 자신의 눈의 한계를 몰랐다.
조카 롯Lot 이 떠난 후 여호와께서 여전히 가나안 땅에 머물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and look from”창13:14 고 하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다.
아브라함은 즉시 장막을 헤브론으로 옮겨 거기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만났다. 아브라함이 ’주목‘ 해 본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본 것이다.
⑵ 믿음은 예수님을 바라보게 한다.
아합 왕King of Ahab 의 폭정 하에서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미가Micah 선지는 그 암울한 역사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시편105:4절에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 즉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히브리서12: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다. 믿음은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고 예수님을 생각하게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행동할 때 물위를 걸을 수 있는 기적의 현실을 체험 했다.마14:29
그러나 베드로가 “바람을 볼”마14:30 때 그 물에 빠졌다.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이 세상 환경에서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눈이 고정되어 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 집사 스데반은 돌에 맞아죽는 최악의 순교 현장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현실은 보이는 것 밖에 없다.
이 보이는 세상 환경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지상의 교회 역시 보이는 것이다. 보이는 교회는 불완전 하다. 그러나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⑶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갖게 한다.
히브리서11:1절을 잘 이해하면 현실 생활에서도 새로운 영적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히11:1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믿음의 “보이지 않는 증거The Evidence of Faith”가 무엇인가?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바람이 있다 없다는 말로 논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람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다. 바람은 공기의 입자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제로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람의 영향을 보면 바람의 존재와 그 움직이는 방향을 알 수 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연기가 바람 방향으로 흘러간다.
믿음 자체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이 우리게 작용하는 그 변화와 영향을 보고 믿음을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되어 광야로 나갈 때 밤에는 불기둥과 낮에는 구름기둥이 저들을 인도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광야 길을 답사했거나 광야의 환경을 경험하지 못했다. 최소한 200만 명이 먹고 입고 숙영할 곳과 안전한 곳이 어딘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저들은 불과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을 뿐이다. 출13:20~2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들이 애굽에서 경험했던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경험했다.
홍해가 갈라지는 이적, 바위에서 샘물이 터지는 이적, 메추라기와 만나의 경험 등, 애굽에서 430년 동안 눈으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직접 확인하고 피부로 느낀 증거들을 얻었다.
그들 가운데는 믿음의 사람 “모세”가 있었다.
히브리서는 모세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는가?
히브리서11:27절은 모세의 믿음에 관하여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소개한다.
모세는 보이는 애굽의 바로를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순종했다.
마찬 가지로 참된 믿음의 삶은 보이는 것에 대하여 웃고 울고 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모든 인생을 걸고 행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들은 시간적으로 잠깐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한 것이다.
믿음은 곧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래서 성도는 보이지 않는 “증거”를 가지고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베드로전서1:8 “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했다.
’영원하지 않은 모든 것은 영원히 쓸모가 없다.‘
All that is not eternal is eternally useless.
영국의 유명한 C. S. 루이스Clive Staple Lewis, 1898-1963 캐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성공회 교인이 한 말이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눈을 고정시키고 주목해 사는 것이 곧 믿음의 삶이다.
3. 믿음은 삶의 ’증거‘를 고백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report.
히브리서 11:1절은 믿음이 예수를 믿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작용하는 실제적 변화를 소개한다. 이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현재 삶 가운데서 반드시 믿음이 작용하는 변화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11:2절에서는 역사의 과거에서 믿음이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소개한다. 즉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v.2 라는 말씀이 그렇다.
“증거를 얻었느니라ἐμαρτυρήθησαν ”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여기 딱 한 번 사용되었다.
그 증거가 무슨 증거인가? 그들이 얻었던“증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히브리서를 받았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처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히브리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엇보다 그들의 조상이자 신앙의 선배였던 역사상 믿음의 모범을 보인 “선진the elders ”들의 삶을 들어서 교훈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는 현실적 유혹을 감안해서 구약성경을 여러 번 인용한 것이다.
격려와 권면 가운데 특히 절정을 이루는 구절이 바로 히브리서10:23~25절이다.
“2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와 함께 참고할 구절이 히브리서10:32~36절의 내용이다.
⑴ 선진들이 보여준 모범적인 공통점은 “믿음의 증거”
“선진들the elders”은 히브리서11:4절 이하에 소개된 16명과 히브리서 제11장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많은 역사상 각 시대마다 살아갔던 성도들이 포함된다. “선진들the elders”이 살았던 역사의 상황과 시대 환경은 각각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선진들the elders” 모두가 “믿음πίστις”을 가졌다는 것이다.
세상 환경에서 흔들리고 마음을 잡지 못한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저들의 조상들이 세상환경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키고 굳세게 살았던가를 그 실제적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히브리서 기자에게 중요했던 것 같다.
히브리서1:3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ὑπόστασις의 형상이시라”라 했고, 3:14절에서는 “확신”, 11:1절에는 “실상”이라고 각각 번역되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선진들the elders”을 언급할 때 특히 그들의 “믿음πίστις”이 바로 ’현실적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믿음πίστις”이라는 말에는 히브리서에 소개된 “선진들the elders”의 삶이 포함되어있다.
“선진들the elders”이 보여준 모범적인 믿음의 증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의 행동이 수반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감”히11:8, 8~10으로써 그의 믿음의 “증거” 곧 “순종”을 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서 11:16절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커름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했다.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으로 “순종”의 증거를 얻었고, 모세는 그의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 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을 애굽 현실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긴” 것이 바로 모세의 “믿음의 증거”였다.
⑵ 선진들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깨닫는 증거를 얻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11:2, “선진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히브리서12:1절에 언급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히11:39절에는 믿음으로 살다가 먼저 간“이 사람들”, 히11:40절의 “그들”이다. 이들 “선진들”이 믿음으로 얻었던 “증거”가 무엇인가?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ἐν ταύτῃ γὰρ ἐμαρτυρήθησαν οἱ πρεσβύτεροι.obtained a good report”는 말씀은 우리 현실에 적용하면 ’좋은 평판을 받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이 얻은 증거는 역사상 장구한 세월을 두고 교훈과 칭찬이 될 만한 증거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인정함을 받았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중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선진들”은 하나님께 칭찬받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얻었고, 그 증거가 기독교 2000년 역사를 통하여 모든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살아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
“선진들”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깨달음으로써 “선한 행실의 증거”딤전5:10를 보일 수 있었다. 참된 믿음은 “선한 증거”를 나타낸다.
하나님에게 칭찬과 인정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믿음” 뿐이다.
“믿음” 이외 다른 무엇으로도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받을 수는 없다.
⑶ 선진들이 얻은 믿음의 증거들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본보기였다.
히브리서를 기록할 당시의 히브리 기독교인들 가운데 일부는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 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그들 조상들의 믿음 생활을 본보기로 들어서 소개한다.
히브리서11:2절에 “선진들이 이로써ἐν ταύτῃ γὰρ, KJV: For by it”라는 말이 나온다.
“이로써”라는 말은 히브리서11:40절까지 이어진다.
즉 “선진들”이 하나님에게 좋은 평판을 받았던 이유는 오로지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다는 표현이다. “믿음”은 “소망”, “사랑”고전13:3과 함께 항상 보존되고, 믿음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며, 믿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한다.
4.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를 깨닫는 고백
Faith gives us an understanding of God's creation.
히브리서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τοὺς αἰῶνας가 ’하나님אֱלוֹהִ ים 의 말씀NIV, God's command‘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Πίστει νοοῦμεν κατηρτίσθαι τοὺς αἰῶνας ῥήματι θεοῦ, εἰς τὸ μὴ ἐκ φαινομένων τὸ βλεπόμενον γεγονέναι.
믿음은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잘 깨닫게 한다. 깨닫는 것은 이성적 지식이 아니라 믿음이다. 믿음이 깨닫게 한다. 믿음이 선진들로 하여금 무엇을 깨닫게 했는가?
⑴ 선진들은 믿음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창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약성경 시대의 “선진들” 역시 하나님의 창조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깨달았다. 이 엄청난 깨달음을 깨닫게 한 것이 바로 믿음이다.
히11:3절의 “모든 세계τοὺς αἰῶνας, the worlds”히10:5라는 말은 헬라어 ’아이온αἰών‘에 뿌리를 둔 단어이다. 이 단어의 직역은 ’시대age‘, '영원eternity', ’시간의 순환cucle of time‘과 같은 뜻을 포함한다. 즉 역사상 ’모든 시대‘의 모든 “선진들”은 그들이 직접 하나님의 창조를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 ’모든 시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믿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고백의 첫 고백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고백한다.
시편의 한 “선진들”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33:6, 9라고 고백했다. 믿음으로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보이는 것”이 자존했거나 진화했다고 보지 않는다.
성경적 믿음은 창조 역사에 기초를 둔다.
성경은 구약 39권 929장 23,145절, 신약 27권 260장 7,957절의 전체 31,102절 가운데 첫 번째 절이 창세기1: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22:21절의 “아멘”으로 마친다.
이렇게 31,102절 중 창세기1:1절을 뺀 31,101절을 다 믿을지라도 그 믿음은 성경적 믿음이 아니다. 성경적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초로 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 있는 욥에게 질문하셨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38:4
아무도 하나님의 창조를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선진들”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의 시대를 형성하시며, 변함없이 창조 세계를 관리하시며 유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시대를 관리하시며 그 가운데 나를 관리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말씀이다.
∙요한복음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⑵ 선진들은 믿음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믿었다.
과학은 관찰될 수 있는 것만 우리에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은 과학적으로 관찰될 수 없는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떤 과학자도 거기 없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한 세계를 우리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체험되게 한다.
여러분!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을 믿지 못한다면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
사자나 호랑이는 자연 세계에서 자연을 누리면서도 그 자연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하나님의 창조를 모르면 짐승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여러분! 성경에서 “세상the word 'world' ”을 표현하는 단어를 ’아이온Αἰών‘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세계Worlds‘ KJV, '우주universe’NIV, ‘시대ages’로 번역이 가능한 ’아이온Αἰών‘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시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해져 있고 예비 된 줄을 안다‘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역사는 순환적이 아니라 선형적이라는 것이 성경의 역사관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역사는 그의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직선적으로 엮어가는 것이다.
이 단어는 ’시간과 공간의 조건하에 존재하는 모든 것, 곧 눈으로 볼 수 있고 육체의 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 한다. 우리의 五感視覺, 聽覺, 嗅覺, 味覺, 觸覺기능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의 五感 기능을 넘어서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能하지 못 하심이 없다.”
누가복음 1:36~37절에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수 그리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한 기록이 있다. 마리아가 바브리엘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라고 했다.
그 때 가브리엘 천사가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했다.
⑶ 선진들의 창조 신앙은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갖는다.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the worlds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6장에 소개된 선진들은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오직 말씀으로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었다. cf.창1:1; 창1:2
∙시편 33:6~9;
6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7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8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 찌어다
9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세상, 이것을 믿는 믿음이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이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히브리서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현재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 때 우리들의 날마다 생활에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날 것이고, 그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첫 번째 증거는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11:3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주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창세기 제1장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And God said”라는 말이 9번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우주의 공간과 시간이 구분되었고 다양한 만물이 말씀대로 창도되었다. 말씀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고 유지시키신다. 왜냐하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 하심이 없기” 눅1:37 때문이다. 시편36:6~9; 119:89~91
∙이사야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 믿음은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맺는 말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실제적인 신뢰이다. 이 “믿음”이 나의 현실에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곧 교회 직분 자들의 봉사이다. “믿음”이 없이는 직분 자들이 체험하는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없다. 히브리서에 소개된 16명의 믿음의 선진들이 우리에게 보인 실제적인 증거가 무엇인가?
1.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용기의 고백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잠3:5~6
∙히브리서 11: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로마서 4: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 모세가 결단한 선택의 고백
이 내용은 히브리서 11:23~31절까지 이어진다. 모세는 애굽에서 받을 눈으로 보이는 권력과 富를 ’거부하고‘, 아직 보이지도 않고 확인되지 않은 하나님의 미래 약속에 대해 ’예‘를 선택했다.
∙히브리서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ἠρνήσατο, refused‘
∙히브리서 11:25
도리어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을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중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북한 이탈 주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가장 힘든 것 중에 두 가지는 자기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과 자기의 의지로 어떤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 체제에서 주민들은 黨의 지시에 의해 살아온 것이 습관이 되어 우리사회에서 적응이 어렵다고 한다.
교회 직분 자들은 자기가 맡은 위치에서 주어진 과제 대해 ’예‘와 ’아니오‘에 대한 선택이 분명해야 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마태복음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요즘 우리 사회나 교계 일각에서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가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목회자, 학자, 정치인 등 예외가 아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야고보 5:12, cf.눅 16:2~4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행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고백
∙히브리서 11:6, cf. 히7:25; 히10:1; 10:22
믿음이 없이는But without faith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賞-救援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구절은 히브리서 11:5절에 대한 해답이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 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두 가지 기본 조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을 좋아하신다.
이것을 정확하게 파악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한 것이다.
☆☆☆
그러나 히브리서11:13~14절은 서진들에 대하여 “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 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했다.
“약속을 받지 못 하였으되not having received the promises”,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줄 땅가나안 땅 으로 가라”창12:1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후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사라, 이삭, 야곱에 이르기까지 500년 동안 그 땅을 차지하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받지 못했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그 땅을 차지하는 현실을 보지 못한 채 모두 죽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지켰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그들의 눈과 귀와 감각적으로 그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실제적인 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땅을 500년 멀리서 보고 “환영”하고 아직 받지 못한 그 땅을 오로지 믿음으로 그 약속을 믿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실 것이다’라는 종교적 신앙을 버려야 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환난을 지난 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받을 것과 그들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를 멀리서 오직 믿음으로 보았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죽음을 강조하여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라고 물었을 때 대답하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음8:56 아브람은 예수님과 비교할 때 2000년 전에 살았다. 그런데 성경은 아브라함이 예수의 “때눅17:22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Your father Abraham rejoiced to see my day”하였다고 하셨다. 무슨 뜻일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통하여 2000년 후에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창18:2
마차간가지로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영생을 얻었지만, 역시 우리도 때가 되면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 넘어 에 영생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음으로 보고 현재 기뻐한다.
이와 관련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매우 중요한 단어 세 개로 구사한다.
즉 ‘믿음의 실체’, 즉 “바라는 것들의 실상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라는 표현들이 그렇습니다.
여기 “바라는 것들”은 우리의 희망 사항이 아니라 확실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체험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5:5절에서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소망”은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마음으로 맛을 보았기 때문에 영광의 소망이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그런가 하면, “믿음”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는 것의 실재라는 확신이다.
이 “믿음”은 곧 모세의 믿음이다. 모세는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 같이”히11:27 하며 행동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특징이다.
현재의 우리의 삶에서 믿음은 항상 미래를 내다본다. 현재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항상 장차 우리에게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소망’ 곧 아직 체험되지 않은“바라는 것들”을 통해서 현재를 보는 것이다.
성경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을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즉 믿음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감각적 경험으로 산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약속을 믿고 사는 것이다. 그 약속의 근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하신 말씀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신명기 8:3;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신명기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런 믿음은 로마서10:17절의 말씀대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2:19~2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의 믿음의 삶이 고백되어 있다.
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함이라,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계신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예수님은 우리의 영과 접촉하여 나로 하여금 그 분을 믿게 한다.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믿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다는 증거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13:5절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을 받은 자니라.”했다.
고린도후서4:6~7절에서는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은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나타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임재 하신다.
이것은 동시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를 믿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나타나심과 우리가 그를 믿는 행위는 동시적이다. 이를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잘 설명했다.
갈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To reveal his Son in me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해를 했을까?
갈라디아2:20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이해 한 것이다.
오리가 “믿음 안에서 살 때” 우리가 체험하는 놀라운 변화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이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계시기를 원하신다.
에베소서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는 믿음의 비밀이다.
골로세서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예수님의 삶의 실천이 없는 종교적 신앙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기적을 체험한다. 놀라운 능력을 경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깨달아진다.
이를 위해 우리는 히브리서 10:23절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vv.22~25
【Reference】
∙ttps://www.blueletterbible.org/comm/guzik_david/study-guide/hebrews/hebrews-11.cfm
∙https://www.logos.com/grow/what-does-the-word-faith-mean-in-hebrews-11
∙https://www.raystedman.org/bible-overview/adventuring/hebrews-all-about-faith
∙http://www.abideinchrist.com/messages/heb11v1biblicalsavingfaith.html
∙ttps://www.bibletools.org/index.cfm/fuseaction/bible.show/sVerseID/30176/eVers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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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in 'Hebrews' 〈warrencampdesi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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